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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남도의 다락집

그림이 있는 남도의 다락집 2부- 해남 옥산서실

입력 2021.04.29. 17:10
해남 옥산서실

맑고 높은 언어의 품격, 삼당시인 백광훈


'삼천리외, 심친 일편운간명월(三千里外, 心親一片雲間明月)'

'삼천리외'는 삼천리 밖으로 양자의 거리다. '친'은 눈에 보일만큼 가까운 것이니 '심친'은 마음으로 가깝다는 뜻이다. '일편운간'은 한조각 구름 사이이고, 명월은 밝은 달이다. '삼천리 밖에서 한조각 구름 사이로 비치는 밝은 달과 마음으로 가깝게 지내고 있소' 함경도 안변에서 벼슬 살던 봉래 양사언이 서울의 옥봉 백광훈(白光勳 1537~1582)에게 보낸 편지다. 전문이 고작 열두 자다. 양사언은 국어책에 실린 시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를 쓴 문신이자 조선 4대 서예가의 한 사람이다. 형 양사준, 아우 양사기와 함께 글에 뛰어나 중국의 삼소(三蘇: 소식·소순·소철)에 비견된다. 백광훈은 손곡 이달, 고죽 최경창과 더불어 이름을 떨친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서예에서도 영화체(永和體)에 빼어난 명필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기행가사의 효시인 '관서별곡'의 저자 큰 형 백광홍, 둘째 형 백광안, 종형 백광성 등 한 집안에 네 명의 문장이 나왔다하여 '일문사문장(一門四文章)'으로 유명하다. 나이는 양사언이 백광훈 보다 스무 살 많지만 두 사람은 시인이자 명필로 일세를 풍미했으며, 명문장의 가문까지 서로 닮은 데가 많았다. 이런 경우 고봉과 퇴계처럼 나이를 떠나 '절친' 혹은 '심친'이 되게 마련이다.

'서울에서 어느 봄날 편지 한통을 받아드니(一紙書來漢口春) 글 속에 적힌 것은 심친이란 말 뿐이네(書中有語只心親) 그리는 마음 외려 구름 달에 가득하니(相思却羨雲間月) 삼천리 밖 사람에게도 나누어 비추이네(分照三千里外人)'

양사언의 편지에 답하는 백광훈의 시다. 그냥 읽으면, 한양의 변방 삼천리 먼 곳에 외따로이 살면서 구름 사이 밝은 달에 마음을 두며 지내고 있다는 말이지만 그 속에는 차마 말하지 않은 말들이 많이 들어있다. 기어이 어쩌는 것 보다 차마 어쩌지 못하는 것 속에, 진정 어쩌고자 하는 것은 더 많이 담긴다. 사랑한다고 말하면 사랑이 사라져버릴 것 같아, 저 명월의 은유 속에 그리운 마음을 다 담아두었다. 양사언이 하고 싶은 말도 '심친'이었고, 백광훈이 알아먹은 말도 '심친'이다. 심친은 달빛에 스며 삼천리 밖 서울에 비친다. 과연 언어의 품격이 다르다.

1547년, 백광훈의 나이 11세 때의 일이다. 당시 서당에 다니는 학동들 사이에 초-종장 놀이라는 것이 있었다. 시의 초장을 부르면 종장을 답하는 놀이이다. 어느 학형이 '춘(春)'을 불러 고시(古詩)로 종장을 답하라고 운을 떼었다. 백광훈은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강화수수춘(江花樹樹春)'이라 응수했다. 학형이 "그런 시구가 어디에 있느냐"고 따지자 즉석에서 전편을 외웠다.

'저녁놀 비낀 강에 피리소리(夕陽江上笛) 가랑비 속 강 건너는 사람 있네(細雨渡江人) 남은 울림 아득히 간 곳 없고(餘響杳無處) 강가 꽃나무마다 봄이 왔구나(江花樹樹春)'

시격이 완전하여 모두 그런 시가 있겠거니 했다. 백광훈이 곧이어 즉흥시임을 실토하자 좌중이 그의 시재에 놀라 감탄했다. 이 이야기가 향리에 퍼져 유명한 일화로 전해온다. 『옥봉시집』에 전하는 시 '능소대 아래 피리소리를 들으며(陵宵臺下聞笛)'이다.

옥봉(玉峰)은 장흥 출생으로 해남에서 자랐다. 어려서는 문신 이후백에게 배웠고, 22세에 진도로 귀양 와 있던 노수신을 사사했다. 1564년, 28세에 진사시에 합격한 이후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고, 더 이상의 과거시험도 포기했다. 처가인 해남 옥천면 원경산 옥봉 아래 '옥산서실'을 짓고 시를 쓰며 은거했다. 유년에 문재를 인정받고 앞길이 밝았던 백광훈, 지방의 미미한 양반가문 출신으로 재산이 많아 호의호식할 처지도 아닌데 왜 출사를 포기하고 뜬구름 같은 시인의 길에 들어섰을까?

'지난 왕조의 절터에 가을 풀(秋草前朝寺) 남은 비석에 학사의 글(殘碑學士文) 천년을 흐르는 물(千年有流水) 지는 해에 돌아가는 구름을 본다(落日見歸雲)'

해남 옥봉사

그의 시 '홍경사(弘慶寺)'이다. 홍경사는 천안시 성환읍에 있던 절이다. 경향을 오가는 교통의 요충인데 가끔 도적이 출몰하여 1021년 고려 현종 때 창건했다. 절 서쪽에 객관(廣緣通化院)을 지어 사람과 말에게 숙식을 제공했다. 한림학사 최충이 그 내용을 적어 비석을 세웠다. 500여년이 흐른 뒤 옥봉이 그 앞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인파로 넘쳐나던 사찰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마당에 푸르렀던 풀은 가을, 잿빛으로 퇴색하고 있다. 오랜 비바람을 견디고 비갈(碑碣)만 남아 옛 학사의 문장을 전하고 있을 뿐. 천년을 흐르는 물은 변함없이 흐르는데, 하늘 서편 비낀 노을에 돌아가는 구름, 그 구름을 응시하는 눈길 하나. 한 점 수묵화 같은 이 시는 유한(有限)과 무한(無限)의 대비인가? 절터와 가을 풀, 돌아가는 구름은 무상한 것들을, 돌과 글과 물과 해는 영원한 것들을 말함일까? 생명의 소멸과 자연의 순환을 그려놓은 것일까? 서녘으로 넘어가는 구름을 바라보는 주체는 물인가, 사람인가? 알 듯 모를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이 당시(唐詩)의 맛이다. 농담(濃淡)으로 그린 단순한 그림 같은데 들여다볼수록 다채롭고, 봇짐 진 한 나그네의 모습이 떠나질 않는다. 가을 사지(寺址)에 홀로 서서 흐르는 물과 구름을 바라보다가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한 선승의 모습이 이와 같지 않을까,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시를 쓴 사람이 벼슬살이는 어려울 것이라는 그런 생각은 든다. '홍경사'는 '옥봉집'에 첫 수로 실려 있다. 학사의 '잔비(殘碑)', 봉선홍경사갈기비는 국보7호다.

1572년(선조 5) 명나라 사신의 접빈 책임을 맡은 노수신이 시문을 응수할 인물로 해남에 은거하던 제자 백광훈을 불렀다. 관직에 있지 않았는데도 제술관 임명을 간청하여 허락을 얻은 것이다. 스승을 따라 의주에 가서 손님을 맞았는데 중국 사신일행이 그의 시와 서예를 보고 깜짝 놀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문재를 인정한 조정에서 수차례 관직을 내렸으나 나아가지 않다가, 41세 되던 1577년 선릉참봉으로 첫 벼슬길에 올랐다. 완산 영전참봉, 정릉참봉 등 능참봉을 거쳐 사암 박순의 천거로 1580년 주자도감 감조관이 되었다. 백광훈은 시문뿐 아니라 명필로도 이름을 날렸다. 이이, 송익필, 최립, 이산해, 양사언, 이순인, 하응림 등과 무이동(武夷洞)에 모여 교류하여 세간에서 이들을 '팔문장(八文章)'이라 불렀다. 율곡은 옥봉의 시를 '맑음'(淸)이라고 평했다. 정철은 『송강집』에서 '그의 문장은 빼어남과 맑음을 기개로 하고 있고 청명한 시가와 오묘한 필법은 으뜸이다. 글을 논할 때 언제나 칼날처럼 서늘하였다'고 썼다. 신흠은 '기는 완전하고 소리는 맑고, 색은 옅으면서 예스럽고, 뜻은 바르면서 법도에 맞다'면서 '천득(天得)'하였다고 극찬했다. 옥봉은 참봉 재직 중에 병을 얻어 1582년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46세. 가난이 어려워 잠시 낮은 벼슬에 나아갔을 뿐 그의 한 생은 시와 자연을 떠나지 않았다. 오언·칠언 절구와 율시 514수를 남겼다. 사후 16년만인 1608년, 아들 진남(1564~1618)이 흩어져 있던 유고들을 수습하여 절도사 윤안성이 '옥봉시집'을 간행했다. 아들 역시 문인이자 서예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군량과 의병을 모집하는 활약을 펼쳐 『난중일기』에 '백진사'로 기록된 인물이다. 백씨 부자가 쓰던 고문서와 유물 등 소장품들은 '옥산서실'에 보관되어 있으며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글=이광이 시민전문기자·그림=김집중

글 : 이광이

언론계와 공직에서 일했다. 인(仁)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애인(愛人)이라고 답한 논어 구절을 좋아한다. 사진 찍고, 글 쓰는 일이 주업이다. 탈모로 호가 반승(半僧)이다. 음악에 관한 동화책과 인문서 '스님과 철학자'를 썼다.

그림 : 김집중

호는 정암(正巖)이다. 광주광역시 정책기획관 등 공직에서 30여년 일했다. 지금은 고봉 기대승선생 숭덕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강의도 한다. 고교시절부터 한국화를 시작하여 끊임없이 작업을 하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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